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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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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56회 작성일 24-02-2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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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2.20.2024)

 

▨ 마태복음 6:5-15

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의 왕국 비전, 땅에 임한 하늘의 왕국 비전의 핵심에서 우리는 자기 방에 들어가 은밀히 기도하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만납니다. 

기도는 신비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기도는 천장을 뚫고 하늘로 올라갈 수 없어요”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기도는 굳이 천장을 뚫고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네 아버지께서 그 은밀한 곳에 너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생각과 소망과 두려움을 보시고 또한 아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단어들을 들으십니다. 

그는 또한 우리들이 말로 채 다 옮기지는 못하는 것 까지도 들으십니다. 

기도는 사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의미에서 신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늘과 땅이 실제로는 서로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징후요 신호이기 때문에 신비입니다.

하늘과 땅이 겹치는 순간들이 존재하며, 하늘과 땅이 겹치는 장소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기도한다는 것은 곧 그 시간과 그 장소(어떤 시간, 어떤 장소도 그런 시간, 그런 장소가 될 수 있다)가 바로 하늘과 땅이 겹치는 장소요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도가 시공간 안에서 하늘과 땅이 겹쳐짐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것은 또한 물질 안에서, 즉 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 우리가 만들어진 진흙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합쳐 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기도한다는 것은 곧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이게 얼마나 대담한 이야기인지 깨닫기 바랍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살아있는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그리고 당신 안에 그의 처소를 만드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사실을 생생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당신의 방에 은밀하게 들어가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하나님을 받아들여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그렇게 할 때, 깨달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만약 기도가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진흙 덩어리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합쳐 짐에 관한 것이라면, 기도는 ‘나’라고 불리는 이 존재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도는 나를, 용서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무시와 괴롭힘을 당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괴롭혀온 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자신도,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위대한 기도가 함께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정말로 단순하면서도 정말로 심오합니다. 

아이들도 주기도문을 배울 수 있지만, 나이든 지혜로운 성도들도 여전히 주기도문에서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합니다. 

하늘은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가 하나님, 즉 우리가 엄청난 용기를 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분을 만나는 곳입니다.

친근하다고 해서 경멸해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며, 우리는 그 이름에 합당한 예우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바는 그의 나라가 임하고 그의 뜻이 하늘에서 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기이한 현상이지만, 사실 기도 자체가 이에대한 최고의 사례이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그 목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지만 또한 우리는 그 약속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이러한 틀 안에 그것이 간단한 내용이건 복잡한 내용이건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채워 넣습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의 빚을 즉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을,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놀라운 이야기이겠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진 빚을 탕감해 주소서.

그리고 이어서 중요한 내용인데, 구원 하소서. 

자주 반복되는 개인적인 유혹이건, 아니면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도 하나님의 구원이 마침내 동터 오기 전에 닥칠 것이라고 믿으셨던‘시련’이건, 그 시험과 심판의 기간에서 우리를 구원 하소서.

또한 악한 자로부터 구원 하소서. 

예수의 공생애 중 많은 부분은 어둠의 권세와 맞선 전투였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통치권을 그 권세들로 부터 회수하시는 중이라고 선언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내용으로 기도하는 순간, 우리 역시도 이 전투에 뛰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서 위험에 맞서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서 위험에 맞서기 보다는 그의 승리와 그의 구원과 구출을 내세웁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이다. 

이 기도는 ‘산상수훈’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또한 왕국을 따름에 있어서도 그 중심에 위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쳐 주소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당신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톰 라이트 목사님의 인사이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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