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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2.18) - 주일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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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61회 작성일 24-02-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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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은…<행8:1-8>

 

1.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 ‘사울’이라는 자가 주도하는 큰 핍박이 일어납니다. 

그는 교회를 진멸하기 위해 집집을 찾아다니며 남녀를 끌어 다가 옥에 넘기기까지 했습니다. 

이와 같은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 외에 다른 제자들 모두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집사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럴 때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사람들이 빌립 집사의 말과 행하는 표적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을 따랐고, 그러므로 많은 더러운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나가고, 또한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아서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 세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교회에 대한 핍박이 오히려 복음이 확장되어지는 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보이신 후 하늘로 승천 하실 때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행1:8>에서 이르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놀랍게도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인해 이루어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여러분들에게 또 다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고난’이라는 것은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는 실족하게 하는 것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일은 도리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를 만났을 때 예수님께 묻기를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까 그 부모이오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대답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어떤 힘든 일도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 주시고 이르시기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실행했더니 마침내 소경은 눈이 밝아져 돌아오게 됐습니다. 

그처럼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일하심을 믿고 순종하게 되면 그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경험하는 일이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곳에 예배당을 마련해서 이사 오기까지 무려 일곱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Smokey Hill미국교회에서 Dayton에 있는 한국 교회를 빌려 오후 1시에 예배를 드렸는데,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 스러웠을 때 케네디 골프장 앞 오피스 건물로 옮겼습니다.

예배실 천장도 낮고 몇 걸음 안 걸으면 끝이 닿는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지금 우리 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의 기초가 다 시작됐습니다. 

주인 허락도 없이 벽을 허물고 공간을 넓히는 공사를 했습니다. 

건축 공사 연습을 미리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여선교회 만두를 거기서부터 만들기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또 거기서 전도가 돼서 주의 일꾼으로 충성하시는 교우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데 유대인이 건물을 매입하더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을 때 가동빌딩 안식일 교회로 옮겨서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교회가 시끄럽다고 두 달도 안돼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또 급히 찾아간 곳이 Jamaica에 있는 오피스 건물이었습니다.

거기는 정말 예배를 겨우 드릴 정도로 작았기 때문에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예배당을 친교실로 Transformation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친교가 끝나면 다시 예배당으로 셋팅을 했습니다. 

이사에 이력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생이 없었다고 하면 지금의 예배당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배당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사정이 도리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로 부터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듣습니다. 

성도님 가운데 한 분은 이민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12>.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121:7> 이 말씀과 같이 지켜 주시는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뜻하지 않았던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는 일이 됐던 것입니다. 

또 어느 가정은 하루 아침에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기가 막힌 방법으로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는 간증이 됐던 것입니다. 

삶에서 경험될 수 있는 모든 일들, 어떤 일이든 믿음으로 살게 되면 그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마부가 약대에 여행자를 태우고 사하라 사막을 지날 때였습니다. 

날이 저물어 오아시스에서 밤을 지내게 됐는데 그때 마부는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여행자가 “지금 누구에게 기도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못 봤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줄 어떻게 아십니까?”

마부는 아무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고 그 다음 날 일어났는데, 여행자가 하는 말이 “아, 간밤에 약대가 우리 천막을 몇 바퀴 돌았구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마부가 묻기를 “약대가 도는 것을 봤습니까?”

“못봤습니다.”

“만져는 보았습니까?”

“만져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압니까?”

“아, 이 사람아 여기 모래 위에 약대의 발자취가 있지 아니 한가?”

그때에 아침 햇빛이 온 사막을 비치면서 찬란한 사막의 풍경을 이루게 됐습니다. 

마부는 그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가리키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발자취가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어떤 경우에도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집안 일이든, 직장에서든, 상터에서든, 어떤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그 모든 일들을 나를 구원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과 복음을 증거하는 일임을 믿으시고, 믿음으로 감당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둘째, 빌립 집사의 사역은 복음과 삶의 일치였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제자들 모두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지역으로 흩어졌을 때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성으로 갔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 사람들이 다 꺼리는 지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B.C.722년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공해서 멸망시켰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앗수르 사람들에게 지배를 당해 피가 섞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한 이방인 취급을 했고,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가야 할 때면 일부러 사마리아를 비켜 외곽으로 돌아 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 집사님은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과 같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빌립 집사님께서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할 때 사람들이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행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따랐더라’ 빌립 집사님은 말로만 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그리스도를 믿는 분명한 믿음의 표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주 전에 여러분들에게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믿음의 표적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막16:17-18>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믿음의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듯이 어둠의 영을 물리치고, 새방언을 하듯이 천국 언어를 사용하고, 징그러운 뱀을 집듯이 남들이 다 꺼려하는 십자가를 기꺼이 감당하는 삶을 살고, 또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슴에 충만한 것 때문에 세상의 어떤 고난이나 말에도 상처를 입지 않고, 오히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한 것과 같이 마음이 아프고 몸인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사랑으로 손을 뻗어 기도해 주고, 일으켜 세우는 치유를 행하는 것입니다. 

빌립 집사가 성령 받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전할 때 그의 삶에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의 표적들도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런 빌립 집사가 전하는 그리스도를 믿은 것만이 아니라, 뿐만 아니라 그가 전하는 말을 일심으로 따랐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고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때문에 기쁨이 있고 생명이 있고, 그리고 죽어서만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경험하며 삽니다. 

이를 생각하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 있다고 해도 감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것 만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은 주일이면 오전에는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이 하도 이상해서 어떤 이가 할머니에게 묻기를 “할머니 왜 오전에는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시고 오후에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시는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할머니 대답이 “내가 죽으면 어디를 갈지 어떻게 알아? 둘 중에 하나라도 걸쳐 놔야 그 중 하나라도 갈 것 아냐?” 그랬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인생 만큼 불행한 삶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구원 받았고, 그러므로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살고, 그리고 죽어서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구원 받지 못해 죽은 영으로 말미암아 지옥의 삶을 살고 그러므로 영 순위로 지옥에 갈 영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의 피로 구원하신 이유는 그 좋은 영생의 삶, 천국을 나만 받고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내 아내, 내 남편, 내 부모와내 자식, 그리고 우리 주변의 이웃에게 전해서 같이 영생의 삶을 살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이 말만 그럴 듯 하게 하고, 삶은 전혀 아니라고 하면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당신이나 잘 하시오”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1:1> 말씀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요1:14>에서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삶, 예수님의 삶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자녀됨의 영광을 봤던 것입니다. 

 

자주 들은 간증이기 때문에 감동이 돼서 여러분들 에게도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교우 중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해서 힘들어 할 때 기꺼이 돕는 일에 힘을 씁니다. 

직접 건물을 임대해 주시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을 당해 힘들어 하는 가정을 위해 직접 복잡한 장례 절차들을 처리해 주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분이 얼마나 인격적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분이신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믿음과 삶을 분리되지 않은 일치의 삶을 살려고 애를 쓰시는 분이신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삶을 사셨을 때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있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 사는 우리들 역시도 삶이 말씀이 육신이 될 때, 다시 말해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됨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 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그런 우리가 전하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구원의 역사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 모두도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과 동시에 또한 말씀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믿음이 되심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물론 하나님의 자녀됨의 영광이 나타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셋째는 복음을 믿고 온전히 따랐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 집사가 전하는 말을 듣고 또한 행하는 표적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행8:7-8> 말씀을 보면,  

7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 빌립 집사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아무개가 이번 총선에서 사마리아 지역에 나온데”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아니면 경제나 재정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행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 집사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예수님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께서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내쫓아 주시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신 ‘그리스도’(Χριστός)시라고. 

그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들이 당했어야 할 고난을 대신 당하셨다고…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까지 하셨다고, 그래서 인간의 더러운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하늘로 오르셨다고.

하늘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리고 그 말씀처럼 자신도 예수님께서 부어 주신성령을 받아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 됐고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 이와 같이 믿음의 표적들이 나타나게 됐다고. 

그와 마찬가지로 당신들도 지금의 나와 같이 행복한 영생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에 매여 살아왔던 모든삶을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으라고.

그리고 그 사랑과 그 은혜를 믿어 예수를 모시고 살라고, 그러면 당신들도 나와 같이 성령 받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된 인생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럴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 모두가 예수로 말미암아 믿음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빌립 집사를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을 따른 것 때문에 그 많던 귀신이 떠나가고, 상처 난 마음들이 치유되어 중풍병자가 일어서고 앉은뱅이가 걷는 생명의 역사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성 안이 큰 기쁨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찬236장>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 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또 들려 주시오/ 저 뵈지 않는 천국 주 예수 계신 곳 나 밝히 알아 듣게 또 들려 주시오/ 평생에 듣던말씀 평생에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 주시오’

‘아침의 이슬 방울 쉬 사라짐 같이 내 기억 부족하여 늘 잊기 쉬우니/ 잘 알아 듣기 쉽게 늘 말해 주시오 날 구속하신 사랑 또 들려 주시오/ 이세상 헛된 영광 날 미혹할 때에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들려 주시오/ 천국의 빛난 영광 내 눈에 비칠 때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 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평생에 듣던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 주시오’

내 영이 살고, 그런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도 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나 자신부터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많이 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 사랑 이야기하는 그 사람도 그 사랑 이야기를 듣는 다른 사람도 성령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것 때문에 영이 살고, 가정이 회복되고, 상터가 번성하고, 자녀들의 앞길이 열리고,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인카운터’ 프로그램 중간에 ‘Most’라는 짧은 영상 하나를 봅니다. 

‘Most’는 체코 말로 ‘다리’라는 뜻입니다. 

그 영상은 본래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영화부분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었습니다.

내용은 예전의 부산 영도 다리처럼 배가 오면 다리를 올려 주어 지나가게 하고, 기차가 오면 다리를 내려주는 ‘가동교(可動橋)’에서 일하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아버지에게는 떨어질 수 없는 어린 아들 ‘로다’가 있었습니다. 

그 날은 출근할 때 그 로다를 데리고 출근을 했고, 로다는 다리 강가에서 놀았습니다. 

배가 들어오자 아버지는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를 올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났을 때 예정 시간보다 일찍 기차 한 대가 다리로 달려왔습니다. 

아버지는 기계를 점검하느라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다리 밑에서 놀고 있던 아들이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기차가 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계속해서 아버지를 향해 “아빠 기차가 와요!”라고 소리쳤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듣지 못하자, 직접 다리를 내리려고 다리로 올라가서 수동 레버를작동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은 그 과정에서 다리 사이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때서야 기차가 달려오고 알게 된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아들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없었고, 다리 사이에 떨어져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순간 아버지는 엄청난 갈등에 휩싸입니다.

기차 안의 사람들을 살리려고 하면 다리를 내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들이 다리에 끼여 죽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다리를 그대로 두면 기차가 강으로 추락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기차는 계속해서 다리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이런 일을 전혀 모르는 승객들은 잡담도 하고, 또 뭘 먹기도 하고 또 어떤 한 여인은 마약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심 끝에 승객들을 살리기 위해 다리를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기차는 안전하게 다리를 건넜지만,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가슴 안고 울부짖습니다. 

인카운터를 할 때면 매번 그 영상을 보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이 세상에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죄인인 인간은 죄로 인해 고통을 겪고 결국에는 사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인 된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고,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영상 Most에서 아들을 희생시키고 기차 승객들을 살린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무런 죄가 없는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하여금 죄인인 모든 인간이 당해야 할 형벌을 대신 담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맞으셨고,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모든 죄가 씻어졌고, 나음을 받았고 또한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말합니다. 

‘필립스 브룩스’라는 사람은 ‘은혜’에 대해서 정의하기를 ‘God’s riches at Christ’s expense’ 곧 은혜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희생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것 모두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기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러므로 그 뜻을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다’

‘강권’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쉐네코’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사방에서 소를 몰다’라고 의미입니다. 

소는 모는 대로 갈 수 밖에 없지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으로 강권적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 집사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들었을 때 그들 또한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이끌려 일심으로 말씀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 가운데 충만했던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들이 치유 받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어 사마리아 성에 진정한 큰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도 오늘 전해진 예수 십자가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믿어 그 사랑에 매여 일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의 삶에도 망하게 하는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상처 난 심령들이 치유 받고, 삶의 놀라운 변화로 인해 내 영혼이 기쁘고, 내 가정에 기쁨이 충만하고,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듯이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Most’ 영상을 보면 기차 안의 승객들 거의 모두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의식을 못하는데, 마약을 하려고 했던 여인이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다가 아들을가슴에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왜 저 사람은 아이를 안고 저렇게 오열하는 것일까?’

몇 년이 지났습니다. 

영상의 마지막 장면은 마약을 하려고 했던 여인이 결혼을 해서 자녀들과 함께 행복해 하는 모습을 아버지가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아버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지는 모습으로 영상은 끝납니다. 

바닥과 같은 삶을 살았던 여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아들을 잃었지만 아버지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사랑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사랑해서 주님 말씀을 온전히 따르게 되면 우리의 심령과 그리고 우리의 가정과 직장, 상터, 그리고교회, 우리의 삶에 모든 자리에도 큰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결론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 때 사람들이 그런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들도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을 사심으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자녀됨을 영광이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나를 사랑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심으로 어둠의 영들이 떠나가고, 치유의 역사가 경험되시고,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분들과 관계된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 또한 기쁨으로 충만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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