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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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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4-03-2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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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3.22.2024)

 

▨ 마태복음 11:1-19

 

1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5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10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 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서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어야 하는가를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기 위해서 떠나십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세례 요한은 로마 식민정권의 앞잡이였던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해 정죄를 한 것 때문에 붙잡혀 투옥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럴 때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 리오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은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을까요?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섭섭해서였을까요?

자신은 정의를 따라 행한 것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신을 돌아봐 주시기는 커녕 계속해서 여러 성읍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전도하시는 것이 섭섭해서 물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로니이까?”라고 물었던 이유는 그의 사역에 근거한 질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 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심령에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영접되어 좌정하시고 그 인생을 다스리시어 천국이 되게 예비하는 사역이었습니다.

높은 산은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지고, 굽은 것을 바로 잡는 사역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교만한 마음은 겸비한 마음이 되게 하고,  성처 있는 심령은 치유하며, 비뚤어진 마음을 바른 마음이 되게 하는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그 심령에 영접되어 천국을 경험하는 삶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와 같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때론 헤롯 안티파스의 그릇된 행동을 과감하게 정죄한 것과 같이 핍박은 당연했던것입니다. 

그럴 때 그런 자신의 사역을 통해 예수님의 대답하심과 같이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하게 되고,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심령에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면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 확인하고 기뻐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마11:12>에서 이르시기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삶은 같은 인간이지만 참 멋진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만이 생명이시고 천국이시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예수님께서 구주로 영접된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기꺼이 핍박과 고난이있더라도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여러 가지로 극찬을 하십니다. 

<마11:9>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

<마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예수님 당시 세상은 참 무감각했고, 또한 이율배반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시의 상황은 피리를 불어도 사람들이 춤추기 않고, 또 애곡해도 가슴을 치지 않고, 요한의 금식할 때는 귀신들렸다 하고, 예수님께서 잡수실 때는 예수님을 향해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도 예수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돈을 벌려고 하고 그렇게 벌어서 얻은 것으로 자신의 일락을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가 좋고, 복음이 생명이라고 전해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마비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오늘 세례 요한의 삶은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들 역시도 세례 요한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의 마음에 예수님이 있을 수 있도록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당했던 핍박과 고난이 있더라도 우리들 모두가 진리의 말씀을 따라 행하고, 그와 같은 말씀의 삶을 통해 교만한 심령들의 영을 깨우고, 상처난 심령들을 치유하며, 그리고 비뚤어진 마음을 섬김을 통해 바르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들 역시도 주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하셨던 극찬, 곧 선지자 보다 나은 자니라, 이 보다 큰 이가 없다, 혹은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다, 칭찬 받는 믿음의 삶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 보다 더 큰 칭찬은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내 자신부터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천국의 삶을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하루도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사십시다. 

우리들이 만나는 심령들, 우리의 가족들은 물론 내 가까이 있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혼들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천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믿음은 물론 그 이전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천국의 삶을 사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 세례 요한의 삶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에게 더욱 주의 은혜와 지혜를 더해 주셔서 나 자신도 세례 요한과 같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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