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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25) - 주일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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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03-2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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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3.25)

▨ 사도행전 9:32-43

 

 

이미 우리를 복되게 하신 하나님

 

1.

 

<사도행전>은 사울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시 베드로에 대한 사역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애니아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워지낸 지 팔 년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애니아를 보고 이르기를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라고 했습니다. 

애니아가 이런 베드로의 말을 믿고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상에서 일어난 중풍병자를 보고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치유는 룻다에서 일어났는데 사론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주께로 돌아왔을 정도로 소문이 났던 것입니다.

 

어떻게 팔 년 동안이나 중풍병으로 고생했던 애니아가 상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수 있게 됐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라는 베드로의 말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요10:9-10>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마귀 사단이 우리들에게 와서 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고 그러므로 사망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귀 사단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음이 장성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평강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건강한 사람이 되게 치유하시고, 사업도 형통하도록 일하고 계시고,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복을 받아 사는 사람되게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치심을 믿어 일어섰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창22:17-18>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 드리는 척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칼을 들어 아들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시고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대단하지 않습니까?

산 닭 잡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100세에 그것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칼로 잡으려고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11: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살리신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능력을 통해 복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복되게 하심을 믿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이 말과 같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낫게 하심을 믿어 정돈할 때 일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 하나님께서 나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는구나!” 이를 믿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건강하게 하시는구나!” 이를 믿고 건강한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건강케 나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셔서 선한 일에 힘쓰게 하시는구나!” 이를 믿고 열심히 일하고 선한 일을 할 때 부요케 됨과 선한 일에 쓰임받는 나를 보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복음의 진리가 있습니다. 

몇 주전 금요일 찬양기도회 시간에 <사무엘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군대 장관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 성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사자를 다윗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 치고 이 성을 쳐서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 성 랍바 성을 공격해서 이미 다 이겨 놨으니 다윗 왕이 와서 차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다윗은 그 즉시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쳐서 취하고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금 면류관을 취해 씁니다. 

존귀와 영광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것 만이 아니라, 성안에 있는 모든 좋은 물건들 까지도 무수히 얻게 됐고,  암몬 족속을 인질로 잡아 벽돌 굽는 일등 일을 하게 했고, 암몬 성의 다른 성도이같이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다고 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복에 다윗이 한 일은 요압이 싸워서 이미 다 취해 놓은 것을 가서 취한 것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모든 영광과 존귀와 복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골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좋은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갔던 사단 마귀를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미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싸움을 싸우는 것이고, 그럴 때 우리가 할 일은 다윗이 가서 쳐서 취했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해 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취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금요 기도회 시간에 드린 말씀인데, 한 한달 됐나요? 

하바나 서울 BBQ앞에서 쌀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한 포대 씩 나눠준다는 연락이 이곳 저곳에서 왔습니다. 

교회는 열 포대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 소릴 듣고 저는 집사람에게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난한 교회도 아니고 그 쌀 차라리 어려운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집사람도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쌀을 안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이곳 저곳에서 계속해서 쌀을 공짜로 나눠 준다고 가져가라고 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길 바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그렇게 철썩 같이 약속했던 집사람이 오후에 쌀을 열 포대를 받아온 것입니다. 

좀 당황스러워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 나하고 우리 교회는 쌀을 안 받기로 약속했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집사람이 하는 말이 “왜 안 받느냐? 공짜로 준다고 하는데 안 받는 것도 바보가 아니냐?”라고 하면서 그것도 자기가 제일 먼저 가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잘했다”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존귀와 영광과 복을 다 취해 놓으셨는데, 그것 취하지 않는다고 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미 믿음의 존귀와 영광과 복을 취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더러 취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미 참된 부요를 취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것 취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예수님께서 취해 놓으신 것 도전해서 취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테텔레스 타이’ 곧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질병을 모두 치유해 놓으셨고, 그 밖의 좋은 모든 것들을 우리들을 위해 이미 취해 놓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라고 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복되게 일하시고 계심을 믿으심으로 그대로 행하셔서 영광과 존귀를 얻으시고 그런 내 자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으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그 다음 베드로의 치유 사건이 우리들에게 알려 주는 교훈은 가까이 계신 예수님을 찾으라 하는 것입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 대부분 이 다비다로부터 속옷과 겉옷을 지음 받았을 정도로 선행과 구제를 했던 여제자였습니다. 

사람들은 다비다가 죽자 슬픔 가득한 가운데 시신을 씻어 다락에 뉘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베드로가 룻다 가까운 욥바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시라는 간청을 한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일어나 가서 다락에 올라 사람들을 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해 이르기를 “다비다야, 일어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비다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그런 다비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녀의 산 것을 보이자, 온 욥바 사람들이 알고 많이 주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욥바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들입니까?

팔 년 동안이나 침상에 누워있던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운 베드로가 가까운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곧바로 베드로를 불러 도움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죽었던 다비다가 다시 사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어떤 어려움도 예수님이 있으시면 죽음 조차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사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곧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는 우리들이 인생을 잘 살게 하는 모든 지혜와 가치, 그리고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그와 같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디 멀리 계시지 않으시고 바로 우리 가까이 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들이 도움을 구하면 도와 주시기 위해 늘 우리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시는 목사님이 알려주시는 이야기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전화할 때 국내 전화 요금을 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국제전화 요금을 내야 한다고 농담을 한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택 받은 민족이니 천국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시기보다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특히 절박한 심령들을 도우시기 위해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와 같은 예수님을 찾기 보다, 인간적인 방법, 혹은 사람, 혹은 물질을 찾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가까이 두고도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집은 전 주인인 목사님께서 포틀랜드로 사역지를 옮겨 가실 때 살림을 그대로 두고 가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지하에는 엄청나게 많은 살림살이들로 가득했었습니다.

한번도 입지 않았던 운동복들이 수두룩했고, 각종 생활용품과 주방 그릇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모두가  30년 정도된 것 때문에 쓸모 없는 쓰레기가 되어서 30야드 덤프를 빌려서 다 버렸습니다. 

그 가운데는 새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쓸모 없는 것들이 된 것 때문에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기업을 경영할 때 돈을 주고 종업원을 고용했는데 일을 하지 않고 놀고 만 있다고 하면 얼마나 아까운 것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가까이 두고도 우리들이 찾지 않는 것 때문에 능력이 많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지 않으신다고 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사62:6-7>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라고 한 것입니다.  

야웨 하나님을 찾아 그로 하여금 영광을 받으시기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원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다른 원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해 놓으신 승리를 모르고 마귀 사단에게 휘둘리며 패배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해속상해서 원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덴버에 약 4만 명의 교민들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 가운데 겨우 10% 만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이 원통합니다. 

우리의 자녀들 얼마나 지혜롭고 키도 크고 인물도 멋집니까?  

그런데 그런 귀한 자녀들을 세상에 빼앗기고 사는 것이 원통한 것입니다. 

다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존귀한 자녀들이 아니겠습니까?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님은 말씀하기를 ‘기도는 아래서 줄을 당겨 하늘 위에 있는 큰 종을 하나님의 귀 밑에서 울리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가까이 계신 예수님을 찾아 원수 마귀에게 빼앗긴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찾게 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사55:6>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찾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어둠의 권세로부터 승리를 경험케 하시고 뿐만 아니라 감당하는 일들마다 형통케 하시고, 그리고 평안히 인도함을 받게 하시고, 산들과 작은 산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게 하시고, 잣나무가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고, 화석류가 질려를 대신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었던 이어령 씨가 얼마 전 그리스도인이 되어 천국에 입성하셨습니다.  

이어령 씨의 딸 미나씨는 국제 변호사 입니다.

미나씨는 1992년에 갑상선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재발을 했고, 설상가상으로 아들도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딸은 점차 시력을 잃어 거의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어령 씨가 그런 딸이 있는 하와이를 방문했지만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찾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미나에게서 빛을 거둬가지 않으신다면 나의 남은 삶은 주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이 기도 후에 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망막이 정상으로 되돌아와서 시력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 일 후에 이어령 씨는 딸에게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나의 지식도 돈도 너를 구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네게 빛을 주셨구나. 네가 시력을 잃었을 때에 본 빛을 나도 볼 수 있도록 도와 주렴.”

이 고백 후 그는 세례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고, 하늘나라 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예수 전하다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구하는 자가 얻고, 찾는 자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다가 낙심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간구는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반드시 응답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두 번 구하고는 금새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가까이 계신 주님을 찾아 일하심을 구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떤 마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런 재판관에 한 과부가 원한을 풀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재판관은 그런 과부의 간구를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재판관은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그는 하나님도 모르고 사람도 무시하는 재판관이었지만 과부가 매일같이 와서 “원한을 풀어 주소서,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 역시도 가까이 계신 하나님께 일하시도록 간절히 구하게 되면 이르시기를 <눅18:7-8>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 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라고 하셨음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만 욥바 가까운 룻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능력이 많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여러분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부르셔서 그 하나님으로 하여금 여러분들을 위해 일하시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이른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이 성숙되도록 일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평강이 넘치고 자녀들의 앞길을 여시도록 일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로 하여금 더욱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일하시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 능력이 나타나 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역사로 영광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결론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이 들리는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풍병자 애니아가 침상을 들고 일어서고, 죽었던 여제자 다비다가 다시 살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됐을 때 이 두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하는 음성, 그리고 “다비다야, 일어나라”라고 하는 음성이그들에게 들렸기에 애니아가 일어서고, 다비가 다시 살게 됐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봤던 골짜기의 마른 뼈들도 에스겔 선지자가 뼈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뼈들이 소리를 내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들이 마치 퍼즐이 맞추어지는 것과 같이 들어 맞고 연락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곧 뼈에 힘 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그 위에 가죽이 덮이게 됐습니다. 

하지만 생기는 없었습니다. 

그럴 때 그 마저도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에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라고 하자, 생기가 들어가서 살았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됐다고 했습니다. 

마른 뼈들일지라도 말씀이 들리자 살아 큰 군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그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곧 나를 위한 말씀이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셨고, 복되게 하시기 위해 일하시고 계시구나!” 이렇게 말씀이 들려서 믿고 일어서는 사람은 일어서는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나를 도우시기 위해 내 가까이 계시는구나. 내가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구나!” 이 말씀이 들려 믿고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는 나를 위해 복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모두의 귀가 열려서 말씀과 같이 나를 위해 일하시고 이미 좋은 것을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을 믿으시고 기쁨으로 취하심으로 영광과 존귀를 얻으시고, 뿐만 아니라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찾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경험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는 복이 있으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를 위해 이미 승리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들 모두 믿음으로 도전해서 승리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얻는 복된 믿음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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