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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고난주간 가상칠언 묵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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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03-2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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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架上七言)  시리즈1

 

▨ 누가복음23:34

3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1.

 

‘가상칠언’ (架上七言)이라고 하는 것은 <4복음서>를 두루 살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말합니다. 

이번 한 주간은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살펴보면서 고난 주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새벽 첫번째 말씀으로 <눅23:34>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본문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바로 직전의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빌라도에게로 끌고 가서 고소를 합니다.

“무슨 잘못을 했느냐?”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가만히 들어보니 예수님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말하기를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까운 나사렛 출신이라고 하자 관활자인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헤롯은 다시 예수님을 빌라도에 돌려 보냅니다. 

그때도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말하기를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해서 저를 우리에게 도로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라고 합니다. 

예수님에게 죽을 만한 죄가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했지만 민란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 됐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럴 때 빌라도는 세번째로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라”라고 합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맞으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데 까지 넘겨 지셨던 것입니다.

빌라도에 의하면 예수님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하신 첫번째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총독 빌라도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무 잘못이 없으셨던 예수님, 왜 죽으셨는가?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것 부터가 살인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사람들은 그런 미움의 증오의 마음을 종교 혹은 교육을 통해 절제할 뿐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때문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롬6:23>.

이 말씀의 의미는 죄는 반드시 합당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이 심판 받지 않고 용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히9:22> ‘율법을 쫓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 흘림이 있어야 용서가 되었던 이유는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누군가 피 흘려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죄인인 인간을 대신하여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짐승이 대신 죽음으로 얻는 속죄는 유한한 것이었습니다. 

더더욱 짐승의 피로 속죄를 얻는 것은 죄인으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빌라도가 아무리 죄를 찾아보려고 해도 죄가 없으셨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인을 대신하여 채찍을 맞으심으로 죄의 모든 고통을 당하게 하셨고, 그리고 죄가 가져오는 사망을 대신 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진정한 용서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유리창을 깼다고 해봅시다. 

그런 잘못을 주인이 용서한다고 해봅시다. 

주인의 용서는 단순히 용서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인이 아이를 용서했다는 의미에는 깨진 유리창까지 자신이 고치겠다는 희생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가득한 우리 인간을 용서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죄가 없으셨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오늘 첫번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그렇게 귀한 예수님의 피로 용서 받은 우리들 역시도 용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용서하시고 나로 하여금 죄의 고통과 사망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받은 용서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와 같은 용서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예수님의 고난 당하심을 기억하는 이 특별한 고난 주간에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의외로 우리는 너그러운 사람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상대의 작은 허물도 좀처럼 용납할 줄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쉽게 정죄하고 화를 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좀 참아줄 줄 알고 또 오래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런 작은 허물에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보다 큰 허물에 대해서 혹은 더 큰 상처가 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용서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용서 할 수 있을 때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용서 할 수 있을 때 나 역시도 용서 받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마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에 얼마든지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나 자신도 용서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용서할 수 있을 때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셋째, 용서 할 수 있을 때 나 자신부터가 행복한 삶을 살고 그러므로 더 이상 고통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십자가에서 만난 그리스도]라는 책에서 영화 ‘언브로큰’의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주고 계십니다. 

미국 육상선수였던 잠페리니는 세계2차 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47일간 태평양 바다에서 표류를 하게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구조되었지만 적이었던 일본 군에게 구조된 것 때문에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포로수용소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며 지내게 됩니다. 

종전과 함께 생환한 잠페리니는 영웅이 됐지만 그의 마음은 상처와 증오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을 고문한 ‘새’(bird)’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 간수에 대한 악몽에 시달렸고, 결국 알콜 중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잠페리니의 삶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게 됐습니다.

그는 아내를 학대했고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삶을 살았던 어느 날 그는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 집회에서 잠페리니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경험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게됩니다. 

그때서야 그는 과거의 악몽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용서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지만 그 용서가 바로 치유다. 진짜 치유는 용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50년 일본 선교팀의 일원으로 일본 땅에 복음을 들고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심한 고문을 가했던 간수들을 만났을 때 그는 그들을 끌어 안고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간수들 모두 그런 잠페리니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예수의 복음을 듣고 그들도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 ‘새’라는 별명을 가졌던 와타나베라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잠페리는 그런 그에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증오는 사랑을 바뀌었습니다. 당신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크 로버츠라는 사람은 잠페리니의 삶에 대해 이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루이 잠페리니는 내가 알았던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용서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처 또한 치유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제한 없는 용서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우리들 모두가 마음에 하나님 용서의 은혜의 바다를 소유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들을 기억하고용서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 때 사람들의 어떤 허물과 잘못을 경험하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우리들 모두가 먼저 주님으로부터 용서 받은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진정한 천국이 되고, 천국의 기쁨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복된 믿음의 삶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죄인이었던 나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기억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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